일상

교회에 대한 나의 기억.

내가 만나는 세상 2021. 2. 2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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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는 어머니를 대신했다.

가정의 가난으로 인해 시장해서 하루 종일 일하시는 두 분의 부재시간은 큰 누나에게 아래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웠다. 

셋집 살던 건넌방에서 업어서 키워준 것도 누나였고, 잘못을 했을 때 빗자루를 든 것도 누나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교회에 다녔다.  

 청과물 시장통에 자리한 슬레브 지붕의 낮은 건물의 교회 'OO교회'가 그 첫 번째다. 그리고 OO인교회,  OOO 교회, OO교회를 대학 전까지 다녔었다.

 어린 시절 교회밖에는 환영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었다. 유치원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노란색 벙거지 모자와 가방이 상징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 원가 노래 가사는(OO유치원, OO유치원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꽃동산~) 이동 말마차 카세트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따라 배웠을 뿐이다.

 그 시장통 교회들 안에서 매직으로 쓰인 찬송가 괘도를 보고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노래하고 율동을 따라 했다.  성경구절을 암송하기도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 따라 눈을 감고 기도를 라는 행위를 따라 하며 배웠다.

 파란색 손바닥만 한 신약성서를 가지고 다니며 어른들이 들고 다니는 글씨도 커다랗고 검은색 양장본에 빨간색, 금색으로 옆면이 칠해진 성경책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어릴 적 생각- 성격 책이 참 중요하고 어디에도 갖고 가고 싶다는 마음에 중학교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여름방학 캠프 '천로역정'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성경책이라고 했더니 탈락을 하고 벌칙으로 다른 활동을 한 기억이 있다. )

꼬마 때 시장 안 oo교회 안에서

 방학이면 여름 성경학교에 가고 큰북을 치며 온동네를 돌아다니는 전도 행사에도 따라다녔다. 유일하게 헌금시간만이 주눅이 들어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렸던 순간이다. 헌금이 없어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곳에서 받은 성경학교 여름 티셔츠를 자연스레 입고 다녔고, 받은 노랑색 교회 가방은 누나에게서 물려받은 서예도구를 넣어서 국민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붓글씨를 쓰고 수돗가에서 붓을 빨던 기억을 되돌려주었다.  

 그 교회들을 진득하게 한 곳에 오랫동안 다니지 못하고 옮긴 이유는 교회가 먼 곳으로, 멋진 건물의 교회당으로, 부자들이 다니는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 건축헌금과 십일조를 내는 교인들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나 스스로가 창피함을 느끼는 게 싫었다. 물론 좋은 교회 선생님들도 많이 만나고 즐거운 기억도 남아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어울리는 장소를 아는 것도 한 가지가 아닐까?

 교회의 사회화 역할은 대학 초기까지였다. 머리가 굵어졌고, 설교를 듣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들, 이러면서 반항심이라는 것이 생겼다. 교회 청년부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기에는 나 스스로 의구심이 많았고, 내가 부딪치는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교회의 세계관 혹은 세계관을 설명하는 선생님들의 안목은 부족해 보였다. 이것은 약간의 변명일 수도 있다. 신앙심이 충실하지 못하다고 인정하라면 인정하겠다.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시절 감정적인 굴욕감이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어느 겨울 교회 옆 한옥으로 된 건물에서 고등부 예배 후 찬양시간 모임을 할 때, 교회 선생님 한 사람이

"누가 산에서 고기를 굽고 왔나? 매캐한 냄새가 나네!"

하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이 말을 아직까지 기억한다.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심결에 옷에 코를 대었다.

속으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랬다. 헌금 행사처럼. 

나의 삶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을 굳이 교회에서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싫었고,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기생충'의 운전기사 송강호가 집주인 이선균을 살인한 이유를 

나는 아주 뼈져리게 공감한다. 

누나도 대학 때 다니던 교회를 그만 나갔다.

교회에도, 학교에도, 슈바이처 박사의 식탁에도

그들만의 사랑만 있었다.

의자는 비었지만.

나는 의자를 내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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