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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에 내리쬐는 햇살이
베개에 눌린 얼굴 가까이 드리울 때,
낮잠에서 깨어난 눈은 아직
쥐오줌으로 누렇게 뜬 천장 벽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요구르트 한 병 두 모금만에 넘기고
쪽마루에 걸터앉아 학교 간 형누나를 기다리며
두 손으로 개 그림자를 만드는 일도
이제 그만이다.
주인집이 마당에 지붕을 덮고
마루를 통으로 넓히는 바람에
햇살 맞던 셋방 쪽마루는 사라지고,
손빨래 널던 어머니는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주인집이야 이제 소채 구멍도 덮혀졌으니
밤 몰래 똥오줌 싸던 꼴도 이제 끝이겠지.
여섯 식구, 꼬질한 살림
아버지 술주정에 이골이 난 주인집은
더 이상 세를 주지 않고 이삿짐을 빼버렸다.
다락방도 없는 청과물시장 근처
송 씨 아저씨 반지하방으로
빨간색 자개장 화장대, 녹슨 철제 장롱
여닫이 흑백 TV, 누나 공부책상
이불, 옷 보따리 두 더미를 싣고
리어카 몇 번 오고 가더니
금세 이사라는 게 끝나버렸다.
같은 동네 고개 들면 보이는 거리지만
예전처럼 문간방 지현이네에
저녁까지 놀던 일도 이제 끝이다.
온 동네 놀던 흙길
콘크리트 길로 덮이던 날에
내 작은 시절 그리움도
같이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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